역사적으로 보험은 기원전 3,0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의 국가 형성과 함께 시작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는 동서 간 교역이 활발하였는데 상인들 입장은 상품과 자금을 운반하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 막대한 상품과 자금을 가로챌까 봐 불안하였다.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불안이 있던 것이다. 그래서 피고용인들의 재산이나 가족들을 담보로 잡고 고용했다. 만약 피고용인들이 상인들에게 손해를 끼치면 재산을 몰수하거나 식솔들을 노예로 팔기도 했다. 이러한 위험 회피 방법은 손해보험의 유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보험은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항구도시에서 흔히 이루어졌다. 항구도시에서 보험은 무역업자가 항해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 항해를 시작한 후 항해가 무사히 성공하면 빌린 원금에 이자를 갚고, 해상사고로 이어지면 원금뿐 아니라 이자까지 갚지 않는 방식이었다.
또 로마 제정 후기에 ‘콜레기아’라는 상호부조가 있었다. 3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신앙과 부조를 위해 결합한 것이다. 이 당시는 그리스도교가 정착되어 있었으므로 장례는 중요한 행사였다. 매월 일정 금액을 모아두었다가 조합원이 사망할 경우 장례비와 유족의 생활비를 지급하였다. 이런 상조회는 우리나라 전통에서도 사회적으로 널리 시행된 두레나 향약 등에서 발견된다.
보험은 공동체들 안에서 서로를 돕는 것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 중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마을의 모든 사람이 조금씩 도와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공동체 안에 상호 간의 도움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 빈자리를 보험회사가 차지한 것이다. 또 보험회사가 있으니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미국에 ‘아미쉬’라는 공동체가 있다. 이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면서 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마을 모든 사람이 서로 도와준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따로 보험이 필요가 없다. 미국 법원에서도 이들에게는 보험이 필요 없다고 인정하였다. 그만큼 이 공동체가 서로 잘 보살펴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필요에 따라 보험을 들지만 사실 우리의 근본적인 필요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교류와 협력이다. 이웃을 돌아보고 서로 정이 오가는 옛 마을의 분위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그리워할지 모른다.
참된 보험은 이웃과의 친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함께 돌보아 주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바로 가장 좋은 보험이다. 즉 이웃에게 건네는 한마디의 인사나 작은 친절이 바로 보험금을 납부하는 것이다.